4차례의 중동 전쟁 이후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의 정세와 향후 양국 간 관계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4차례 중동 전쟁 이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정세
4차례의 중동 전쟁 이후 그동안 테러단체로 취급받았던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1973년 11월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유일한 합법기구로 인정받고, UN의 옵서버(참관국) 자격을 인정받게 되었다.
1979년에는 미국의 중재로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평화 협정이 맺어진다. 미국 대통령의 여름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의 중재로 만난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과 이스라엘의 메나헴 베긴 총리는 평화협정인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체결하고, 이스라엘은 이집트에 시나이 반도를 되돌려 준다.
그러나 이는 중동 내 전체 아랍 세력과 이스라엘의 평화 협정이 아니라,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평화 협정일 뿐이었다. 즉,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되지 않은 협정이었다.
1989년 소련의 붕괴로 냉전 체제가 해체되자 이스라엘은 미국과의 안보협력이 약해질 것을 우려해 팔레스타인에 우호의 제스처를 보낸다. 이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등에 대한 자치권을 팔레스타인에게 넘겨준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오슬로 협정'이 1993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맺어진다. 이에 따라 1994년에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오슬로 협정을 맺은 2년 후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가 협정 내용에 불만을 품은 유대인 극우파 청년이 쏜 총에 맞아 암살되었고, 뒤이어 강경 유대인 민족주의자인 네타냐후가 이스라엘의 총리가 된다.
팔레스타인은 2006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총선에서 급진 무장정파인 하마스(Hamas)가 온건파인 파타(Fatah)에 승리해 다수당을 차지했다. 하마스는 오슬로 협정에 반대에 무장 테러활동을 전개했었고,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합법 정부가 아닌 테러단체로 간주하면서 양국 간 유혈충돌이 계속되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의 전망
2017년 미국의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텔아비브 대신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공식 인정하고 그간 텔아비브에 있었던 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옮기는 등 친이스라엘 정책을 펼쳤다.
팔레스타인에 아랍국가의 건설을 지원하던 주변 여러 아랍국가들도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안보를 위해 이스라엘과 속속히 평화협정을 체결하면서 국제사회에서 팔레스타인의 입지는 더욱 약해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하마스와 파타에 의해 계속되는 팔레스타인 내부 분열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점점 힘든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 관련 글 바로가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1 - 이스라엘의 역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지속되는 분쟁의 원인을 이해하기 위해 첫 번째로 이스라엘의 기원부터 독립까지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이스라엘의 역사 - 이스라엘의 기원 이스라엘의 기원
hcsg.tistory.com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2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과 4차례의 중동 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2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과 4차례의 중동 전쟁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과 4차례의 중동 전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 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이스라엘과
hcsg.tistory.co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