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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2 -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과 4차례의 중동 전쟁

by Θ▒∮㎮ˇㅅº 2022. 9. 5.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과 4차례의 중동 전쟁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 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원인

 

중동의 화약고라 불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지속되는 분쟁의 원인은 매우 다양하다. 가장 큰 원인인 영토를 둘러싼 다툼을 배경으로 종교, 민족, 중동 내 세력 간의 알력 다툼, 강대국들의 이익 등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기에 분쟁의 해결 역시 간단하지 않다. 

 

팔레스타인은 어떠한 지역이기에 이토록 끊임없는 분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 민족이 처음 거주하게 된 것은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명을 받아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찾아 이주해 오면서부터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자신의 고향을 떠나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해올 때 이미 이 지역에는 토착민이 살고 있었다. 즉,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의 토착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후 이 지역에서 살던 유대인들은 로마에 식민 통치를 당할 무렵 대다수가 추방되어 세계 여러 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오스만 제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차지하면서 오랫동안 이 지역은 아랍인들이 터전을 잡고 생활하게 된다. 

 

19세기 후반 극에 달한 반유대주의로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살았던 이스라엘로 돌아가 유대민족 국가를 세우자는 '시온주의' 운동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해온 유대인들은 그리 많지 않았고, 분쟁의 가능성도 크지 않았다.

 

그러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지금까지 분쟁이 계속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영국이 한 상호모순적인 약속 때문이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5년에 아랍인들이 영국을 위해 전쟁에서 싸우면 팔레스타인에 아랍국가를 세워주겠다는 '맥마흔 선언'을 했다. 그러나 1차 세계 대전 중 오스만 제국을 대신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위임 통치하게 된 영국은 1917년에 유대계 자본의 이용을 위해 팔레스타인 내 유대 국가의 설립을 지지한다는 '밸푸어 선언'을 했고, 이렇게 모순되는 두 약속은 훗날 비극적인 분쟁의 싹이 된다.  

 

영국의 밸푸어 선언과 나치에 의해 행해진 유대인 홀로 코스트로 인해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로 인해 서서히 영토를 두고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인 간의 다툼이 시작된다.

 

팔레스타인 지역 내 유대 국가와 아랍 국가를 공동으로 설립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영국은 결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분쟁 해결을 UN에 이관한다. UN은 '팔레스타인 특별 위원회'를 설치하고 1947년 팔레스타인 지역 영토의 약 56%에는 유대국가를 약 43%에는 아랍 국가를 세우고, 예루살렘은 국제 신탁통치 지역으로 남기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불합리한 결정이었는데, 당시 팔레스타인 영토의 87.5 %를 팔레스타인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반면에 유대인이 차지한 지역은 6.6%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UN의 결의안 발표 후 유대인과 아랍인 사이의 갈등이 심해져가던 중 1948년 4월 9일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근처의 팔레스타인 마을을 공격하여 주민들을 학살했다. 이에 충격과 공포에 질린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자신의 보금자리를 떠났고, 1948년 5월 14일 유대인들은 다비드 벤 구리온을 총리로 하는 이스라엘 공화국의 수립을 선포한다.

 

 

 

1차 중동전쟁(팔레스타인 전쟁 · 독립전쟁, 1948년)

 

이스라엘의 건국 선언에 이집트, 트란스 요르단,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 주변 아랍국가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함으로써 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1차 중동전쟁은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아랍 연합국의 승리가 예상되었으나, 아랍 연합국 간의 불화와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등으로 결과는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유엔의 팔레스타인 분할 안에 따른 면적인 56%보다 훨씬 더 넓은 80%에 해당하는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고 약 8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하였다.

 

 

2차 중동전쟁(수에즈 전쟁 · 시나이 전쟁, 1956년)

 

2차 중동전쟁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문제가 아닌 수에즈 운하 운영권에 의해 발생한 분쟁이다. 수에즈 운하는 이집트에 위치하고 있었으나 영국과 프랑스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은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하였고 이에 격분한 영국과 프랑스가 이스라엘을 끌어 들어 일으킨 전쟁이 2차 중동전쟁이다. 

 

이스라엘은 시나이 반도의 요충지를 점령하고 영국과 프랑스군은 수에즈 운하를 점령하여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나, 미국과 소련의 압박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 운하의 운영권을 포기했고, 이스라엘 역시 시나이 반도에서 철수해야 했다.

 

 

3차 중동전쟁(6일 전쟁 · 6월 전쟁, 1967년)

 

3차 중동전쟁은 골란고원을 둘러싼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충돌이 계기가 되어 발발한 전쟁이다. 시리아는 이집트와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맞섰으나 미국과 유럽의 원조를 받는 이스라엘이 6일 만에 대승리를 거두며 전쟁은 끝이 났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은 시나이반도, 골란고원, 가자지구, 요르단 강 서안 지역 등 광대한 영토를 점령하였다. 이로 인해 또다시 많은 수의 팔레스타인 난민이 발생했고, 아직 남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내부 갈등의 불씨가 되었다.

 

 

4차 중동전쟁(욤 키푸르 전쟁 · 라마단 전쟁, 1973년)

 

4차 중동전쟁은 이전 중동전쟁에서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기 위해 이집트와 시리아가 연합해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발발하였다. 전쟁 초기에는 이집트와 시리아가 우세하였으나, 이스라엘이 골란고원에서의 반격을 계기로  시나이반도의 이집트 부대를 포위하는 데 성공한 뒤 이스라엘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이후 UN의 개입으로 발표된 중재안을 받아들여 4차 중동전쟁은 휴전이 성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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