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이란 유대교를 믿는 사람을 말하기도 하지만, 이스라엘 민족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스라엘 민족을 유대인이라 부르는 이유와 기나긴 유대인 박해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이스라엘 민족을 유대인이라 부르는 이유
앞 서 말한 것처럼 유대교를 믿는 사람을 유대인이라 하지만, 유대교를 믿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도 유대인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유대인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스라엘 민족의 기원은 아브라함이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의 명을 받아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옮겨오면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되었지만, 사실상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아브라함의 손자인 야곱 덕택이다. 야곱은 이삭의 둘째 아들로 당시의 관습에 의해 하느님의 모든 축복은 형 에사오가 가져야 했으나, 야곱의 간절한 기도로 하느님은 야곱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될 축복과 '이스라엘(하느님과 씨름한 자, 하느님과 겨루어 이긴 자)'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시고 그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번성하게 된다.
이후 사울 왕 - 다윗 왕- 솔로몬 왕에 이르기까지 가나안에서 번영을 누리던 이스라엘 민족은 솔로몬 왕 사후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의 유다왕국으로 나뉘게 된다.
이스라엘(야곱)의 넷째 아들 유다(유대)의 후손들인 유다 지파와 열두째 아들 베냐민의 후손들인 베냐민 지파가 모여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나라를 이룩하였고, 왕국에서 보다 중심을 차지한 유다 지파의 이름을 따 '유다 왕국'이 되었다.
이스라엘의 나머지 아들들의 후손인 10지파는 사마리아를 수도로 하는 '북이스라엘'을 이룩하였다.
기원전 721년 북 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에 멸망하면서 많은 유대인들이 남 유다 왕국으로 피란을 오게 되고, 남아있던 이스라엘 민족은 이민족과 섞이게 되는데 이들을 북이스라엘의 수도였던 사마리아의 이름을 따 '사마리아인'이라 부르게 된다.
남 유다 왕국 역시 기원전 586년에 바빌로니아에 멸망당하게 되지만, 이후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의 온건한 지배하에 '유다(유대)'라는 이름을 존속시킬 수 있었고 이후 이스라엘 민족을 유대인이라 부르게 되었다.
유대인 박해의 역사
유대인 박해의 역사는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페르시아 치하에서 비교적 평화롭게 지내던 유대인들의 삶은 페르시아 제국의 멸망 후 그리스 왕국인 셀레우코스가 유대인들을 지배하게 되며 바뀌게 된다. 셀레우코스의 국왕 안티오코스 4세는 유대인들에게 그리스 신을 숭배하도록 강요하였다. 그는 신앙뿐만 아니라 할례 같은 유대인의 풍습까지 금지시켰고, 이를 어길 경우에는 가차 없이 처형했으며, 이로 인해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다.
이후 로마 제국이 유대 민족을 지배하게 되면서 유대인에 대한 학살은 더욱 심해진다. 다신교였던 로마의 관습에 유일신 사상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은 쉽게 동화되지 못하고 핍박받았다. 로마의 심한 박해에 유대인들은 반란을 일으키지만 로마군에게 진압당하고, 유대인들은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소수민족으로서 힘든 삶을 살기 시작한다.
유대인들은 기독교인들에게도 많은 박해를 받았는데,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다고 생각해 유대인들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으로 유럽 사회는 기독교 세력이 대다수가 되었고 이는 유대인들의 삶에 큰 위협이 되었다.
중세 기독교 사회에서 유대인들은 토지나 가옥을 소유할 수 없었고, 유대인임을 나타내는 뾰족한 모자를 쓰고 다녀야 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좋지 않은 일은 유대인의 탓으로 돌려져 비난과 핍박을 받았으며 흑사병도 유대인 탓으로 돌려졌다. 십자군 원정 당시 많은 유대인들은 성전을 정화시킨다는 명목 하에 대량 학살당했고, 독일, 영국 및 프랑스에서 추방당했다. 추방당한 유대인들은 스페인으로 가 정착하는 듯했으나 곧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유대인은 추방되었다. 추방되지 않은 유대인들은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게토'라고 불리는 강제 거주지역에서 살아야 했다.
프랑스혁명 때 나폴레옹은 유대인을 프랑스인과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는 선언을 했으나, 프랑스군에 복무하던 유대계 장교 드레퓌스가 유대인이란 이유로 스파이 누명을 쓰고 체포되는 드레퓌스 사건이 발생하면서, 여전한 유대인 박해의 현실을 보여주었다.
유대인에 대한 최악의 박해는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로 유대인들은 이를 '쇼아(Shoah)'라고 부르는데, 히브리어로 '재앙'이란 뜻이다. 독일의 정권을 잡은 히틀러는 오래전부터 존재한 유럽 내 반유대주의와 인종적 우생학 등의 편견을 부추겨 유럽 국가 내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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