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은 매년 11월 넷째 주 목요일에 행해지는 미국 최대 명절이다. 나흘간의 연휴 동안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한 해 동안의 은총을 감사하는 날인 추수감사절의 기원과 국경일로 자리잡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플리머스에서의 첫 추수 감사절
신앙의 자유를 위해 떠나는 순례자들을 태운 메이플라워호가 1620년 9월 영국 플리머스 항에서 출발해 폭풍우를 뚫고 11월 20일 드디어 미국 땅에 도착했다. 순례자들은 현재 매사추세츠 지역에 정착했는데, 그들은 그곳을 메이플라워호가 출발했던 항구의 이름을 따 '플리머스'라고 불렀다.
플리머스에 정착한 이주민들이 신대륙에서 보낸 첫겨울은 너무나 혹독했다. 많은 이주민들이 추위와 배고픔으로 사망했다.
새로운 환경에 힘들어하던 이주민들에게 원주민들은 옥수수 씨앗과 칠면조를 주고 기르는 방법을 알려주며 이주민들이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이듬해 가을인 1621년 11월에 첫 수확을 한 이주민들은 원주민들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초대해 함께 수확한 농작물과 칠면조를 먹으며 기쁨의 감사기도를 신께 올렸다. 축제는 3일 동안 지속되었으며 수확에 대한 감사뿐만 아니라 군사 훈련도 실시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로 널리 인정되고 있는 설이지만, 추수감사절의 기원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존재한다.
추수감사절이 지금의 국경일로 자리 잡게 되기까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처음으로 1789년에 11월의 첫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 기념일로 선포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추수감사절은 주 단위의 축제였을 뿐 국경일은 아니었다.
추수 감사절이 지금과 같은 국경일이 된 건 남북 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에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1월의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하면서인데, 이는 '추수감사절의 어머니'라 불리는 새라 조세파 헤일의 공이 컸다. 여류 작가인 새라 조세파 헤일은 1846년부터 17년 동안 추수감사절을 국경일로 제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대통령들에게 보냈고 결국 이를 받아들인 링컨 대통령에 의해 국경일이 된다.
이후 링컨 이후의 대통령들도 1939년까지 해마다 11월의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하며 기념했다.
그러나 플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공황 기간 동안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 시즌의 기간을 늘려 경제를 촉진하기 위해 추수감사절을 한 주 앞당긴 11월 셋째 주로 변경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거세지는 반대에 결국 11월 넷째 주 목요일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는 의회의 법안에 동의하면서 현재의 추수감사절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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